사도신경 강해(3)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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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지난 주 사도신경의 첫 문장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믿음의 고백을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그 전능하심이 천지를 만드신 창조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존재적 격차가 느껴지는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아버지가 친히 되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죠.
우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중에서도 가장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인 부모-자녀 관계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마땅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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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마땅한 일”을 우리는 신학적으로 “구속 사역” 혹은 “구원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그 구속 사역을 계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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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구속 사역을 주도적으로 성취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그분이 오늘 우리의 믿음의 고백의 대상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한 구속 사역을 행하시고 성취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성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의 시작이 바로 오늘 설교의 내용이 되는 한 문장입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외아들” 예수
사도신경은 예수를 “외아들” 예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였을 때 오해할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적 관점에서 아들은 ‘부모가 낳은 자녀’의 ‘혈육적 관계’의 의미가 있습니다.
혹은 혈육적 관계가 아닐지라도, 입양과 같은 ‘제도적 관계’ 이것은 일종의 ‘계약적 관계’로 볼 수도 있겠죠.
이러한 혈육 혹은 제도적 관계로 볼 수가 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혈육적 아들 혹은 계약적 아들로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설교 시간에 제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가 무엇이라고 했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무엇을 통해 알았나요?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죠? 자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장 잘 계시된 부분이 요한복음입니다.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혈육적 혹은 계약적 관계로 이해하기에는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아들이신 예수의 관계가 특이합니다.
25절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30절에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38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동시에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며, 아버지 하나님 안에 아들 예수가 계시고, 아들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혈육적 계약적 관계가 아니죠.
즉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의 관계는 인간적 관점에서의 아버지-아들 관계와 유사성이 있을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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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것을 “신적 부자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본질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신적 본질이 동일한 안에서 아버지-아들의 관계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신적 본질 안에서 아버지-아들의 관계가 연합해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 조금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나와서 조금 어렵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신적 본질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그 신적인 속성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사도신경 안에서 봤을 때 하나님의 신적 속성은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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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이죠.
전능하다라는 말에는 ‘자존, 불변, 무한, 전지, 전능 등의 표현이 포함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전능하다’라고 했다면, 아버지 하나님과 신적 본질이 아들 예수가 동일하다면, 우리는 아들 예수도 ‘전능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적 본질을 동일하게 공유하는 아들이 바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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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초대교회에는 ‘아리우스’라고 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이 아리우스는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신적 본질이 동일하지 않고, 유사하다는 일명 ‘유사 본질’을 주장했습니다.
유 사 본질이라는 것은 뭘까요?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슷하나 약간 열등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리우스는 어디까지 주장하냐면,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 중 가장 첫째되고 위대한 창조물이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 보았듯 요한복음의 내용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본질이 동일하며, 그 안에서 아들-아버지의 관계를 누리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아들’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독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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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아들을 얘기할 때 헬라어로 ‘모노게네스’를 의미하는데, 이 모노게네스는 외아들이라는 용례로도 쓰이지만, “특별한 아들”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아들”로서 신적 본질을 공유하는 하나님과의 아버지-아들 관계이며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신비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적용)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 바른 신앙고백을 해야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첫 바른 고백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적인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특별한 아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신적 본질을 동일하게 공유하는 아들이시자, 한분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아버지-아들 관계로 묘사되지만 두 분이 아닌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계신 한분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신거죠.
지금 우리나라에 많은 이단들이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을 낮추거나 없애는 이단이 많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바로 아리우스 주의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창조된 피조물 중 뛰어난 존재일 뿐, 신적 본질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자유주의 학자들) 예수님을 인간 수준으로 낮춰서 생각하여, 인간적 가르침을 주러 오신 분이라고 말하는 자들이죠.~~~~
2. “주” 예수
두번째로 성자 예수님에 대한 고백에서 예수님은 “주” 예수십니다.
“주”라는 말은 Lord, 한자로는 주인 주자입니다.
초대교회의 문화 배경을 보면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이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당시는 주-종 관계의 일종의 노예제도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때 예수님을 로마의 “주”인 황제에 대하여 반역죄로 죽였던 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로마에 대한 반역을 일으킨다는 모함을 명분삼아 유대인들이 죽음으로 몰아넣어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나, 예수님을 “주”로 믿음의 고백을 한다는 것은 초대교회 당시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잇는건가요?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 신적 본질을 공유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신다는 즉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과 같은 주권을 인정한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고 백들이 연결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절대 주권을 가지신 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세상의 절대 주권을 가지신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기 때문에 로마 시대 아래서도 그들은 예수를 당당히 주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예수
또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가 알아야겠죠.
Christos 라는 헬라어는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기름부음받은 자 라는 히브리어는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당시 어떤 의미였습니까?
구원자이죠. 구세주입니다.
온 땅의 구세주가 되셔서 죄인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실 구세주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예수님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예수를 “메시아”,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더 연결해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 예수라는 분을 우리가 왜 믿습니까?
우리가 예수라는 분을 믿는 이유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이시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역할을 모두 감당하지 못하신다면 우리의 신앙은 부족한 신앙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는 구세주가 되셔야만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 되셔야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진정한 주인이 예수님이 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가게 됩니다.
적용)
우리가 한 가지 여기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진짜 구세주로 믿으십니까? 대부분의 분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시겠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님을 진정한 “주”로 모시고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진정한 주처럼 대우하고 계십니까?
제가 무엇을 말하는 거냐면, 여러분 삶의 주재권을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두고 계시냐는겁니다.
여러분 삶에 일어나는 모든 순간에 대한 선택, 그리고 살아가는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계시냐는겁니다.
만약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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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영국의 설교자인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구원하길 바라지만 그들을 다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하셨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길 간절히 바래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릴 위해 그분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받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삶을 우리는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올바르게 고백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우리의 예배에서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믿음으로 고백한다면,
이 고백은 공동체 예배에서 우리 하념ㅇ 한명의 삶의 예배로 확장되고
우리의 삶 전체를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는 삶으로 드리는 삶 전체의 고백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일 하루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죠.
교회에서 행동도 조심하고, 화도 덜 내고, 좀 더 인격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이 교회에서 끝나면 여러분의 신앙 고백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예배가 주일 예배에서 월요일부터의 삶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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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익투스”라는 것 아십니까?
종종 보셨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물고기 모양으로 생긴 어떤 표식입니다.
그리고 이 안에는 헬라어로 IXTUS라고 써있죠.
이게 뭐냐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었던 비밀 표식이에요.
초대교회에 워낙 박해가 심했어서 어떤 초대교회 성도들끼리의 비밀 싸인을 만든건데, 대화를 하다가 바닥에 물고기 모양을 그리면 서로 성도인 것을 알 수 있는 표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에 “익투스”라는 헬라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Θεοῦ Υἱός, Σωτήρ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떼우 휘오스 소테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예배에서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삶에서 아무 상관없이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외아들로, 주로, 그리스도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박해 속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서로 확인하면서 그들의 신앙고백이 그들이 누군지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정체성을 공유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너무 강력하죠.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고 구세주로 모시고 있느냐”입니다.
그 삶의 모습이 여러분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주인이신 것처럼 살아가고 있느냐 그것이 여러분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윤리적으로든, 영적으로든 달라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향기는 어느 순간 우리의 코 속으로 들어와 무언가 다른 냄새로 그것을 알아차리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이 샤넬 향수를 써서 나가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향기가 코 속으로 들어와 샤넬 향수의 냄새가 나게 되잖아요.
그러면 알아채게 되는거죠.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모시는 삶의 모습을 통해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고,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호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